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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 039 - '괴로움의 발생'의 고귀한 진리(苦集聖諦)

비구들이여, 무엇이 '괴로움의 발생'의 고귀한 진리(苦集聖諦)인가 ? 그것은 바로 갈애(渴愛)인데, 갈애란 또 다른 생존을 초래하며, 쾌락과 탐욕을 동반하는, 이른바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 존재(有)에 대한 갈애, 비존재(非有)에 대한 갈애를 말한다.      [*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란, 다섯 가지 감각(눈, 귀, 코, 혀, 몸)의 대상에서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욕망을 말한다.   존재(有)에 대한 갈애란, 지속적이거나 영원한 삶에 대한 욕망으로 특히, 색계(色界)나 무색계(無色界)에서의 생존에 대한 욕망을 의미한다. 이 욕망은, 육체와는 상관없이 존속하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자기-영혼에 대한 믿음인 이른바 상견(常見)하고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비존재(非有)에 대한 갈애란, 이른바 단견(斷..

불교 입문 2025.02.28

불교입문 038 - 자아에 대한 집착 (4)

무아가 부정적인 표현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내용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염세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허무주의를 표방하는 것도 아니다.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한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온을 근거로 영속적이고 변치 않는 자아가 존재한다는 미망과 집착은 생각보다 오래되고 또 질긴 것이다. (『밀린다팡하』 (해제), 2004. 서정형)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일 아(我)가 있다고 생각하는 중생이 있다면 십이인연(十二因緣)을 관하게 하라. 십이인연은 본래 인과에 바탕을 두고 있고, 인과의 일어남은 마음의 작용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마음이 있지 않은데 하물며 몸이 있겠는가? 만일 아가 있다고 하면 있다는 견해를 없애게 하고, 아가 없다고 하면 없다는 견해를 없애게 하라."..

불교 입문 2025.02.28

불교입문 037 - 자아에 대한 집착 (3)

'자아' 혹은 '인격적 개체'가 부정되는 것은 극히 제한적인 정황에서이다. 즉 우리가 '인격적 개체'라고 표현할 때 어떤 내적 규정을 가하고 있는가, 말하자면, 우리가 심리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가 중요한 관건이 된다. '인격적 개체'라고 하든, '나가세나'라고 하든 이름이나 명칭은 그 대상을 변화하는 사물로서가 아니라, '고정된' 사물로, 그리고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결합체가 아닌 실체라고 믿게 하는 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격적 개체'라는 표현 뒤에 '육체 속에 존재하는 영원 불변한 실체'라는 간과하기 쉽지만 의미심장한 단서가 따라다니게 되는 것이다. 즉 부단히 변화 중에 있으며, 어느 정도 독립적인 기능을 하는 현상으로서의 자아가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이며 불변의 실체로서의 ..

불교 입문 2025.02.28

불교입문 036 - 자아에 대한 집착 (2)

그러나 나는 여기 엄연하게 있다. 여기에 있는 내가 거기에 있는 너를 본다는 사실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한 소박한 믿음 위에서 우리는 삶을 영위한다. 붓다는 이러한 상식적 세계를 거부하지 않았다. 흔히 불교의 가르침이 우리의 경험세계와는 동떨어진 초월적 세계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교는 우리의 일상적 경험의 세계를 벗어나 있지 않다. 불교사상이 간혹 심오하고 난해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세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언어적 표현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무아란 엄연한 객관적 사실을 말한 것일 뿐인데도 우리의 욕구와 욕구에 기반하고 있는 언어 관습 때문에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운 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불교 입문 2025.02.28

불교입문 035 - 자아(自我)에 대한 집착 (1)

무아(無我)는 불교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이 불교 교학의 시발이며, 깊은 지혜로써 통찰하는 것이 불교 수행의 끝이다. 무아는 실제로 불교의 중심 개념인 연기(緣起), 공(空), 무상(無常) 등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중요한 만큼 오해의 소지도 많은 개념이어서 무아와 관련한 논란은 붓다 재세 시부터 끊임없이 재연되어왔다.  논쟁은 주로 인도정통철학 등 불교 바깥으로부터 제기되어왔지만, 불교 내부에서도 많은 견해차가 있다. 무아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나(自我)"라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상식을 부정하는 궤변으로 들린다. 독자들은 곧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 "내가 없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누구인가?" 혹은, "그렇다면 나의 모든 경험..

불교 입문 2025.02.28

불교입문 034 - 삼독(三毒) 오욕(五慾)에 집착하는 것 - 갈애(渴愛)

갈애가 모든 악행의 유일한 원인이어서 현재의 삶과 다음 생에서의 모든 괴로움과 재앙의 유일한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하더라도 갈애가 있다면 바로 그 갈애를 원인으로 해서 괴로움과 재앙을 만들어 내는 시기, 분노, 증오 등의 온갖 나쁜 것들이 생겨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이기적이며 생을 움켜잡는 강한 충동과 행동들은, 지금 이 생과 다음 생에 생겨날 갖가지 재앙과 함께 그리고 심지어는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조차, 이 모든 것들은 궁극적으로 몽매함과 어리석음(無明)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불교 커뮤니티 '나는 불자다'에 놀러오세요~https://cafe.naver.com/iambulja

불교 입문 2025.02.28

불교입문 033 - 법의 세 가지 특성(三法印)에 대한 앎

어떤 비구가 물질적 현상(色)은 영원하지 않다(無常){괴로움(苦)이다, 영원한 실체가 없다(無我)}라고 본다면, 감수작용(受)은 ..., 표상작용(想)은 ..., 형성작용(行)은 ..., 인식작용(識)은 영원하지 않다(無常){괴로움(苦)이다, 영원한 실체가 없다(無我)}라고 본다면, 그에게는 바른 이해가 있는 것이며, 이처럼 바르게 보아 싫어해서 멀리하게 된다. 따라서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해) 즐기는 마음을 소멸했기 때문에 탐욕이 없어지고, 탐욕이 소멸했기 때문에  즐기는 마음이 없다. 즐기는 마음과 탐욕의 소멸에 의해서 마음은 자유로워지고 잘 해탈한다. 자신의 행복을 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貪瞋癡라는) 화살을 뽑아라.🙏🙏🙏🙏🙏🙏🙏🙏🙏🙏🙏🙏🙏🙏🙏✅ 불교 커뮤니티 '나는 불자..

불교 입문 2025.02.28

불교입문 032 - 聖人 - 고귀한 사람들 (4)

(4) 아라한; 완전한 성인 - 응공(應供)    열 가지 족쇄에서 완전히 벗어난 성인을 '아라한(Arahat) - 완전한 이' 라고 한다.    아라한에게는 존재를 욕계에 묶어두는 번뇌인 五下分結 뿐만 아니라,    (6) 色界에 대한 욕망, (7) 無色界에 대한 욕망, (8) 我慢-'나'라고 하는 마음,    (9) 들뜸, (10) 無明-어리석음이라는 五上分結(존재를 색계 내지는 무색계라는 보다   차원 높은 세계에 묶어두는 번뇌)도 완전히 제거되어 있다. 아라한에게는   아만심과 어리석음 그리고 안정되지 않은 들뜬 마음이 없다.}🙏🙏🙏🙏🙏🙏🙏🙏🙏🙏🙏🙏🙏🙏🙏✅ 불교 커뮤니티 '나는 불자다'에 놀러오세요~https://cafe.naver.com/iambulja

불교 입문 2025.02.28

불교입문 031 - 聖人 - 고귀한 사람들 (3)

(3) 아나함 ; 되돌아오지 않는 성인 - 불환(不還)    열 가지 족쇄 가운데, 욕망의 세계(欲界)에 존재들을 묶어 놓는,    처음의 다섯 가지 족쇄(五下分結 ; 유신견, 의심, 계금취견, 탐욕, 성냄)에서   완전히 벗어난 성자를 '아나함 (아나가미 Anaagaami) - 되돌아오지 않는 이' 라고 한다.    이 들은 죽은 후에 인간의 세계를 포함한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인 욕계에는    다시 태어나지 않고, 미세한 물질의 세계(色界)에 다시 태어나서    그 곳에서 최상의 목표인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는다.🙏🙏🙏🙏🙏🙏🙏🙏🙏🙏🙏🙏🙏🙏🙏✅ 불교 커뮤니티 '나는 불자다'에 놀러오세요~https://cafe.naver.com/iambulja

불교 입문 2025.02.28

불교입문 030 - 聖人 - 고귀한 사람들 (2)

(2) 사타함 ; 한 번 되돌아오는 성인 - 일래(一來)    열 가지 족쇄 가운데, 네 번째 (감각적 쾌락에의 욕망)와 다섯 번째 (악의) 족쇄를 약화시켜,    거치른 형태의 탐욕과 성냄을 극복한 성자를 '사타함 (사카다가미 Sakadaagaami)    - 한 번 되돌아오는 이' 라고 한다.  즉, 죽은 후에 욕망의 세계(欲界)에 오직 한 번 더     태어나서 그 곳에서 아라한의 깨달음에 이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불교 커뮤니티 '나는 불자다'에 놀러오세요~https://cafe.naver.com/iambulja

불교 입문 2025.02.28